스페셜티 커피

커피농장의 일상

고윤신 2025. 4. 15. 16:27

커피농장의 일상 – 한 잔의 커피가 오기까지

우리가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 한 잔 뒤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산지의 땀과 시간이 스며 있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기후와 노동, 기술과 감정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 글에서는 커피 한 잔이 내 손에 오기까지, 그 시작점인 커피 농장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1. 하루는 새벽 5시에 시작된다 – 농부의 리듬

에티오피아나 콜롬비아, 케냐의 고지대 커피 농장은 대개 이른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해가 뜨기 전, 농부들은 수확 준비를 마치고, 손으로 하나하나 체리를 따기 시작한다. 이 작업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완숙도에 따라 향미가 갈리는 정밀한 감각의 작업이다.

비가 오면 수확을 멈춰야 하고, 건조한 날엔 빠르게 건조장을 정리해야 한다. 날씨, 습도, 바람 – 자연의 모든 요소가 농장의 리듬을 결정짓는다.

2. 손끝에서 향미가 결정된다 – 수확과 가공의 기술

좋은 커피는 수확 이후의 과정에서도 품질이 갈린다. 워시드, 내추럴, 허니 프로세싱 등 가공 방식에 따라 같은 생두도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매일의 관찰과 작은 결정의 연속이다.

예를 들어, 내추럴 방식은 체리를 통째로 말리는 방식인데, 너무 빠르면 신맛이 강해지고, 너무 느리면 잡미가 생긴다. 농부들은 햇빛의 각도까지 고려해 건조장을 옮기거나 덮개를 조정한다. 이처럼 커피는 말 그대로 ‘현장의 직관’ 위에 존재한다.

3. 커핑 테이블 위의 작은 심사

농장에서 1차 가공을 마친 생두는 커퍼(cupper)라 불리는 감별사들의 테이블에 오른다. 향, 산미, 바디, 후미 등 다양한 항목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는데, 이 작은 심사 하나가 생두의 운명을 바꾼다.

점수가 높은 원두는 스페셜티 커피로 팔리며, 농부는 프리미엄 가격을 받는다. 반면 기준에 미달하면 일반 원두로 판매된다. 이 평가 기준 하나하나가 생계와 직결되는 만큼, 농부들은 더 나은 품질을 위해 토양, 나무 상태, 수확 시점까지 모든 것을 점검한다.

4. 커피는 기후 위기와 싸우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커피 생산지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병충해 증가, 강우량의 불균형, 평균 기온 상승 등으로 인해 수확량은 불안정해지고, 생존 가능한 품종의 선택 폭은 줄어든다.

이에 따라 일부 농장에서는 고도에 따라 나무를 새로 심거나, 아예 고온에 강한 새로운 품종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커피 한 잔이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감성적인 메시지가 아니다.

5. 소비자의 선택이 만드는 변화

한 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 생산 과정을 지지하는 일이다. 우리가 '페어 트레이드', '직거래', '싱글 오리진'을 선택할 때마다, 농장의 구조와 가격, 노동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거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 나는 생산자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원두를 고집한 적이 있다. 손님들이 단순히 맛뿐 아니라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때, 커피는 제품을 넘어 연결의 매개체가 된다는 걸 느꼈다.